〈스포츠경향〉종편에 없는 ‘신사의 품격’

신문이나 방송 보도에서 강조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다. 당사자는 감추고 싶어도, 혹은 국가나 단체의 이익에 손상이 와도 대중들이 알고 싶어하고 그것이 공익에 앞선다면 개인 신상부터 국가기밀 문서에 이르기까지 공개된다.

나는 국민으로, 또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알고 싶고, 가장 한국적인 얼굴의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왜 세계인들의 호응을 얻는지 전문가의 분석도 궁금하고, 각 대통령 후보들의 경제정책을 신문과 방송에서 잘 설명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개인사(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과거 연애담 등등)이나 잔혹한 사건(살인사건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 등에는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최근 방송, 특히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와 호기심을 뛰어 넘어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와 인물을 내세운다. 며칠 전, TV조선의 <판>이란 토크쇼에서는 전자팔찌를 부착한 범인에게 아내를 살해당한 남편이 나왔다. 그 사람은 자기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성폭력 전과자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신문과 방송에 용기 있게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상중에도 인터뷰에 응했다. 그런데 이 방송에서는 슬픔을 억누르고 가까스로 방송을 하는 그 남편에게 40분 넘는 시간을 "범인에게 한 말씀 하시죠" 등의 자극적인 질문을 해댔다.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안쓰럽다 못해 부담스럽고 심지어 너무 잔인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꼭 그 남편의 육성으로 "당신도 나만큼 괴로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어야 직성이 풀렸을까.

또 요즘 종편사들의 핵심 프로는 정치토크쇼다. 정치평론가, 논객, 정치학자, 정치인들이 주로 나오는데 보수층의 채널이어선지 등장 인물들의 면면도 다 비슷하다. 요즘은 풍수지리학자, 역학인, 관상전문가들까지 나와 "다음 대통령은 이런저런 사람이 된다"는 말을 늘어 놓는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다 눈이 작은 사람들이어서 눈이 큰 문재인씨는 절대 대통령이 안된다"거나 "모 후보의 가족묘가 있는 곳이 제일 풍수지리가 좋아 유력하다" "착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가 방송 화면을 통해 나온다.

평균 1%도 안되는 종편 프로그램의 빈약한 시청률을 고려하면 크게 걱정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것은 방송의 횡포가 아닐까. 조금이라도 화제가 되기 위해 아내를 잃은 사람에게 "(죽은)아내에게 한 말씀"하라고 부추기고, 역술가까지 동원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를 묻는 것은 시청자의 알 권리나 정보, 혹은 재미 그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품격은 신사만 지녀야 할 것이 아니라 방송프로그램, 특히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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