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향〉65세 여배우의 ‘화양연화’ 윤여정

젊은 여배우들이 롤 모델도 유행을 탄다. 몇년 전까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란 질문에 어린 여배우들은 압도적으로 '국민 어머니' 김혜자를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선배라고 답했다. 그 후에는 이조백자처럼 항상 단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고두심이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윤여정이다. 함께 영화 < 돈의 맛 > 에 출연했던 김효진을 비롯, 많은 후배 여배우들이 "윤여정 선배 같은 여배우가 되고 싶다" "나이 들어도 저렇게 근사하게 늙고 싶다" "연기만 아니라 탁월한 유머감각, 그리고 놀라운 패션센스도 닮고 싶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다. 한 영화전문지가 진행한 '저널리스트가 뽑은 아름다운 얼굴 50' 여자 배우 부문에서 65세의 윤여정은 < 건축학개론 > 으로 국민첫사랑으로 등극한 19세 수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배우 본연의 존재감을 보여준 아름다운 배우를 묻는 설문에서 그는 임수정, 배두나, 김민희, 하지원을 제쳤다. 탁월한 연기력이 그를 아름답게 보이게 한 덕분이다.

KBS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KBS 주말극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이하 넝굴당)은 지난 19일 방영분에서 평균 시청률 42%를 차지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 49%로 시청자를 사로 잡은 장면은 주인공인 유준상과 김남주 커플이나 알콩달콩한 신세대 커플의 연애담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윤여정·장용 커플이 보여준 60대의 절절한 부부애를 보여준 때였다.

30년 전, 둘째 딸을 출산하러 가는 길에 시장에서 아들을 잃어버리고 온갖 구박과 슬픔을 안고 살아온 윤여정은 뒤늦게 동서 나영희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버리다시피 했고, 가족들도 그 사실을 알고도 감춘 것에 충격을 받아 30여 년간 쌓이고 쌓인 분노가 폭발해 동생집으로 가출한 상태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에 걸려 자신이 납치된 줄 알았던 남편이 자신의 무사함을 알고 넋을 잃고 우는 장면에서 윤여정은 안도와 안쓰러움과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린다.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침묵으로 확인한 60대 부부의 포옹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채널을 고정하고 눈물을 흘렸다. 크게 소리내지도 않고, 눈물콧물 범벅이 되지도 않고, 대사도 없이 그저 남편을 안아줄 뿐인데 네티즌들은 "역시 명품 연기"라며 찬사를 보냈다.

KBS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 넝굴당 > 에서 윤여정의 역할은 올해 환갑을 맞는 평범한 주부 엄청애다. 또래 아주머니들이 그렇듯 엄마이자 시어머니이고 부인이자 며느리이며 동서이자 사돈부인이며 할머니인 다채로운 면면들을 그는 상식적으로 묘사한다. 아롱다롱 개성과 성격이 다른 딸들을 키우고, 30년 전 실종된 아들에 대한 죄의식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고 돈 많고 우아한 둘째 동서에 대한 열등감과 물질적 보상에 대한 감사함도 있으며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사는 며느리다. 잘난 아들을 두고도 직접 키우지 못해 잘난 척을 못하고 더 기가 세고 똑똑한 며느리에게 주눅 들기도 하면서 최소한의 교양은 지키기 위해 밑반찬을 가져다 줄 때도 조심조심 아들집 문을 두드리는 엄마…. 과거 국민 엄마 강부자나 김혜자의 무조건 인내하는 모습도 아니고, 박정수의 도도하고 히스테릭한 성격도 아닌 어머니상을 윤여정은 일상의 풍경처럼 보여준다.

고학력은 아니지만 성품 자체가 올곧아서 절대 염치 없는 짓이나 상스러운 언행을 하지 않지만, 큰 딸을 배신한 사위에게는 응징을 하고 "참고 살지 말라"고 딸을 응원해주는 엄마, 영악한 며느리의 태도에 불만이 많지만 며느리 동료 앞에서 당당하게 보호를 해주는 지혜로운 시어머니 역할을 윤여정처럼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보여줄 연기자는 드물다.

그의 연기와 내공에 감탄하는 것은 그가 작품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작 드라마인 < 더킹투하츠 > 에서 그는 왕인 이승기의 엄마, 즉 품위 있는 현대판 왕비였다. 그가 최근 출연한 두 편의 영화는 지난 제65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대받았다. 임상수 감독의 < 돈의 맛 > 과 홍상수 감독의 < 다른 나라에서 > 다. < 돈의 맛 > 에서 그는 연기인생 최초로 베드신을 보여주며 아들 뻘인 30대의 김강우와 파격적인 정사(그는 성폭행이라고 표현했다)를 나누는 탐욕스런 재벌녀로 등장해 찬사를 받았다. 영화 < 하녀 > 에서는 부잣집 주인의 치졸함에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를 되뇌는 선임(?) 하녀역을 맡아 주인공 전도연에 뒤지지 않는 매력을 발휘했다.

영화 < 돈의 맛 > 출연작품 설명회나 각종 인터뷰에서도 '윤여정 스타일'의 화법으로 말한다. 구태여 입바른 소리도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지나침이 없이 말을 해서 기사쓰기가 편하다. 소녀 같은 명랑함, 할머니 같은 노회함, 중년여성의 여유로움과 대선배로서의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각 세대별 여성을 만날 수 있다. 그의 파격적인 베드신에 놀라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본 받고 놀라 임 감독에게 바로 전화했다. 너무 늙은 여자가 이러면 거부 반응이 들고 불쾌감만 줄 것 같다고. 임 감독이 '그 장면이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게 한다'고 하더라. 늘 그렇지만 내가 졌다. 미리 알았어도 했을 것이다. 임 감독에게 무한한 신뢰가 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여자의 만행을 보여주는 장면이니 이해가 갔다. 노배우가 한마디 반항도 않고 벗으라면 벗고 입으라면 입으니 고마워하더라. 그 연기를 통해 나를 표현할 수 있으니 나도 고마운 일이지. 하지만 윤여정이 벗어봤자 뭘 보여주겠나. 영화 흐름상 필요한 행위를 보여준 것이지. 나이 값 해야 하는 연기라 힘들었다. 젊으면 못하겠다고 앙탈도 부리고 신경질도 낼텐데 내 아들보다 어린 배우(김강우) 앞에서 그럴 수도 없고…. 의연하게 많이 해본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느라 힘들었다."

늘 쿨한 척 하지만 그는 엄청난 노력파다. 칸 영화제에 참석했던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레드카펫 행사 외에는 항상 < 넝굴당 > 대본에 빨간 밑줄을 그으며 대사를 분석하고 암기하느라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광이나 여배우로서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기지 못했단다. 살림이건 연기건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도 그는 항상 쿨한 태도를 보인다.

영화 < 돈의 맛 > "배우는 배가 고플 때 진정한 연기가 나온다. 2003년 < 바람난 가족 > 에 출연한 것도 집수리 비용이 필요해서였다. 앞으로 대단한 목표도 없고 후배들에게 미안하지만 연기할 때보다 집에서 밥 먹고 쉴 때가 행복하다. 하지만 이 나이에도 이처럼 많은 역할과 작품이 주어지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임상수 감독은 윤여정에 대해 "장면마다 자기 심장이고, 영혼이고 다 내주는 배우"라고 평했다. 장면마다 영혼을 다 바치는 연기자이기에 65세에도 그는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기인 화양연화를 노래한다.

<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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